아이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문맥이다.
단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농담이 농담인지, 칭찬이 진심인지—모두 문맥 덕분에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가진 아이들은 이 열쇠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이제 뇌파 연구가 그 비밀을 밝혀냈다.
ASD를 가진 아이들은 문맥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데에서 일반적인 아이들과 무엇이 다를까?
이 글에서는 자폐 아동과 비자폐 아동의 뇌가 문맥적 언어를 처리하는 방식을 비교한 최신 연구를 통해 그 차이를 살펴본다.(참조 :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show atypical electroencephalographic response to processing contextual incongruencies)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문맥의 복잡한 관계
자폐 스펙트럼 장애, 흔히 ASD라고 부르는 이 상태는 단순히 ‘사회성 부족’이라는 말로 정의될 수 없다.
이들은 말을 잘하고 유창한 문장을 구사하더라도, 문맥 속에서 그 말을 이해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거나, 칭찬을 비판으로 오해하는 상황들이 그렇다.
왜 그럴까?
뇌가 문맥 정보를 처리하고 통합하는 방식이 달라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ASD 아동은 의미적 단서를 감지하는 능력(N400)과 문법적·논리적 구조를 재조합하는 능력(P600)에서 차이를 보였다.
뇌파가 보여준 차이 N400과 P600
연구팀은 6세에서 12세 사이의 자폐 아동과 비자폐 아동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설계했다.
아이들에게 그림과 그에 맞는 혹은 맞지 않는 문장을 들려준 뒤, 두 가지가 어울리는지 판단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EEG(뇌파 측정 장치)를 통해 아이들의 뇌 활동을 기록했다.
뇌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두 가지였다.
- N400: 단어와 문맥의 의미가 어긋날 때 활성화되는 신호.
- P600: 문법적 오류나 문맥적 불일치를 발견했을 때 활성화되는 신호.
결과는 명확했다.
비자폐 아동은 그림과 문장이 어울리지 않을 때 N400과 P600 신호에서 강한 반응을 보였다.
뇌가 "이건 좀 이상한데?"라고 알려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반면 ASD 아동의 뇌는 이 두 가지 신호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문맥적 단서를 감지하는 ‘레이더’가 약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의미는 보지만,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ASD 아동이 모든 문맥 정보를 놓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림과 문장이 어울릴 때와 어울리지 않을 때의 의미적 차이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뇌가 이를 빠르게 분류하거나 적절히 반응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특히 P600 신호에서 큰 차이가 나타났다.
비자폐 아동은 문맥적 불일치에 즉각 반응하며 신호를 보냈지만, ASD 아동은 두 조건 간 반응 차이가 거의 없었다.
이는 이들이 문맥적 차이를 인지하거나 통합하는 데 신경적 부담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차이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이 연구는 ASD 아동이 왜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비언어적 단서를 놓치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들이 정보의 ‘의미’는 이해하더라도, 그 의미가 주어진 상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종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뇌파 결과는 ASD 아동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높은 반응 시간과 정답률을 넘어서, 이면의 신경적 보상 전략을 암시한다.
즉,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행동 뒤에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뇌의 ‘다른 길 찾기’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자폐 스펙트럼은 뇌의 미묘하고 복잡한 작동 방식이 숨어 있다.
문맥을 처리하는 뇌파 차이는 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지원하기 위한 중요한 퍼즐 조각이다.
어쩌면 ASD를 이해하는 가장 큰 열쇠는 "이해하려는 노력"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이 연구가 자폐 아동과 그 가족, 그리고 이들을 돕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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